[중앙시평] 음주와 운전의 고리를 끊자

[중앙시평] 음주와 운전의 고리를 끊자

중앙일보

입력 1999.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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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질까. 왜 길 건너는 이웃들이 반가움이 아닌 주행의 장애물로 느껴질까. 바로 앞 차가 잠깐 멈칫한다고 경음기를 눌러댈까. 음주운전을 수치스럽게 여기기는 커녕 단속 피하는 묘기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심리는 또 무엇인가.

교통질서는 시민들이 다같이 만들어가는 규율이다.

교통질서가 엉망이라면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흔한 말로 정치 탓도 아니고, 오직 네 탓 내 탓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참여한 작품인 기초질서가 이토록 엉망인 나라에서 민주질서를 꾸려갈 능력이나 있는지 의문이 고개를 든다.

[중앙시평] 음주와 운전의 고리를 끊자

중앙일보

입력 1999.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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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의 폐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해 교통사고로 인한 사상자 수는 베트남에 참전한 국군의 피해보다 더하다고들 한다.

매일 도시에서 총성없는 시가전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것도 무장 병력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이 다른 이웃을 상대로 말이다.

이 나라의 시민운동과 평화운동은 교통사고, 특히 예방 가능한 음주운전 사고를 막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음주운전 하면 생각나는 것이 음주단속이다.

골목길에 그물망을 치고 대량단속하는 방법도 성과는 있다.

하지만 엄청난 인력 투입에다 교통체증 유발, 단속과정에서 오가는 마찰, 단속을 무마하기 위한 뇌물 등을 보면 부작용도 적지 않으리라 믿는다.

과학적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대량 단속으로만 때우려 해서는 안된다.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진지하게 추구돼야 한다.

음주운전이 음주와 운전의 결합이라면, 해결의 출발은 음주와 운전의 분리 작업이다.

먼저 직장에서 회식하는 날은 아예 차를 가져오지 말 일이다.

술 파는 업소에 차 열쇠를 맡겼을 때 주차관리자는 운전자의 음주상태를 확인한 후 열쇠를 건네야 한다.

음주와 운전 모두에 서투르게 마련인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하는 자는 엄벌돼야 한다.

같이 음주한 동료가 운전하고자 객기를 부릴 때 그것을 말릴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이렇게 술 따로, 운전 따로의 관행을 뿌리내리면서, 거기에 제도의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음주감지기를 부착시켜 차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최근 특허출원됐다고 한다.

이러한 센서를 이용한 점화연동장치의 원리는 미국에서 3분의2 이상 주 (州)에서 채택되고 있다.

음주운전 전과자에게는 그러한 센서 부착을 의무화해야 한다.

자동차 회사는 무엇보다 안전도에 역점을 둔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일이다.

음주운전 상습자에게 차량은 하나의 흉기다.

따라서 그로부터 차량을 빼앗아야 한다.

음주 상습자에게는 면허취소는 물론 흉기화한 차량을 몰수하는 조치도 강구돼야 한다.

반드시 근절돼야 할 것은 뺑소니 운전이다.

뺑소니하다 잡힌 자의 가중처벌보다 뺑소니 운전은 반드시 잡힌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방안이 더욱 효과적이다.

뺑소니 사고에 대한 정교한 과학적 감식체계를 갖추어 검거율을 높여가야 한다.

교통사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피해자의 체험적 진술 듣기, 교통피해자의 치료시설이나 가정에서의 봉사, 교통사고 현장 청소 등. 자신들이 만들어낸 교통의 현장 속에서 자기의 부주의가 빚어낸 엄청난 결과를 체험함으로써 참다운 각성이 시작된다.

지난 95년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도시에서는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피해자들의 신발을 시청 광장에 진열하는 행사가 있었다.

주인잃은 갖가지 신발들은 무심코 저질러진 음주운전의 폐해를 소리없이 증언했다.

광장은 사람들의 탄식과 눈물과 꽃들로 채워졌고, TV를 통해 전국을 울렸다.

이 노상 전시회는 ‘음주운전 철폐를 위한 어머니 모임’ (MADD) 이라는 시민단체가 준비한 것이었다.

80년 어린 딸이 음주운전 때문에 사망한 한 어머니의 노력으로 출범한 이 조직은 음주운전 철폐를 위한 정책개발과 행동강령, 시민 캠페인을 조직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음주운전 반대조직으로 입지를 세웠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의 개발이 이 조직의 과학이라면, 마음을 사로잡는 캠페인은 이 조직의 심리학이다.

정책의 과학과 감동의 심리학이 결합될 때 생활밀착형 시민운동의 길이 열리며, 너와 내가 동시에 변화하는 개혁의 길이 열린다.

가정의 달 5월이다.

내 이웃과 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음주와 운전 간의 연결고리를 끊는 일이다.

오늘 술 마시러 간다면 차는 놓아두는 작은 실천부터 생활화하자.

한인섭 서울대교수.형사법